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크 콜먼 (문단 편집) === PRIDE === 이때 [[일본]]의 신설 단체인 [[Pride]]로부터 오퍼가 들어왔고 콜먼은 이에 응했다. 1999년 4월 PRIDE 5의 [[타카다 노부히코]]와 일전에서 콜먼은 내내 상위포지션을 점거한 채 파운딩을 날렸고 타카다는 무기력하게 깔려 아무런 반격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2라운드에 콜먼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줄어들더니 타카다가 힐훅을 성공시키며 콜먼에게 패배를 안겨줬다. 이 경기는 당시 일본에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미국의 국대급 레슬링 선수이자 UFC의 챔피언이었던 콜먼의 파워를 일본의 프로레슬링 영웅 타카다가 서브미션으로 제압한 것이다. 하지만 이 시합은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2라운드 콜먼의 움직임에서 있었던 변화는 시합 당시에도 의아함을 낳았고 콜먼도 "나는 분유값이 필요했다. 거부할 수 없는 오퍼였다."고 말해 의혹을 증폭시켰다. 논란이 남는 타카다전이었으나, 그 후 콜먼이 PRIDE에서 보여준 위력은 엄청난 것이었다. 1999년 11월 [[히카르도 모라이스]]를 시작으로 PRIDE 2000 그랑프리에서 [[사타케 마사아키]], [[쇼지 아키라]], [[후지타 카즈유키]][* 후지타는 부상으로 2초만에 기권했는데 이때문에 체력을 온전할 수 있었다.]를 줄줄이 잡아내며 결승에 진출, '아이스 콜드' [[이고르 보브찬친]]과 격돌한다. 콜먼은 2라운드 시작과 함께 테이크다운을 성공시켰고 69포지션에서 그라운드 니킥을 퍼부어 보브찬친을 격파[* 다만 콜먼과 달리 이고르는 개리 굿리지, [[사쿠라바 카즈시]]와 싸우면서 체력이 고갈된 상태였기 때문에 콜먼과 이고르의 재대결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PRIDE GP를 석권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는다. [[파일:attachment/마크 콜먼/f3.jpg]] 6연승을 달리던 콜먼의 앞길을 가로막은 것은 PRIDE 초대 헤비급 챔피언 '미노타우로'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 2001년 9월 PRIDE 16, 콜먼은 노게이라에게 스탠딩 타격에서 크게 밀리며 힘을 쓰지 못했고, 노게이라가 하이킥을 날리다 넘어지면서 상위 포지션을 차지하고 그의 전매특허인 G&P를 구사했으나 외통장기처럼 진행되는 주짓수 지옥에 말려들어 트라이앵글 암바로 패배하고 만다. 90년대 MMA를 호령했던 G&P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2003년 6월 PRIDE 26에서는 숙적이었던 돈 프라이와 재대결을 벌여 3라운드 내내 그라운드에서 우세를 보인 끝에 만장일치 판정승을 거두었다. 돈 프라이는 불리한 가운데에서도 투혼을 발휘하여 승부를 끝까지 몰고갔고 승리를 거둔 콜먼은 프라이의 팔을 들어주며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 2004년 4월에는 '라스트 엠페러' [[에밀리아넨코 효도르]]와의 경기를 가졌다. 여전히 강력한 파워를 앞세워 태클로 태이크다운을 빼았고 G&P를 펼쳤다. 효도르는 파워에서 밀려 하위에 깔렸으나 콜먼의 레프트 파운딩을 순간적으로 캐치하여 전광석화같은 암바를 성공시켰다. 2005년 2월에 만난 [[미르코 크로캅]]을 상대로는 단 한번도 태클을 성공시키지 못하고 타격에도 밀리면서 결국 레프트 스트레이트에 무너져 KO로 패배했다. 노게이라에 이어 효도르와 크로캅에게 연달아 무너진 콜먼은 2006년 2월 [[마우리시오 쇼군]]과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였다. '여기서도 지면 끝'이라는 결사의 각오를 가지고 임한 콜먼은 태클만으로 쇼군의 팔을 부러뜨리며 1라운드 TKO승을 거두었다. 정확히 말하면 태클을 당하면서 팔을 잘못 짚어 어깨가 탈구된 것인데 이를 모르고 콜먼이 계속 공격을 가한 탓에 쇼군측의 세컨이 난입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